[환경정의시선] 저탄소 녹색성장과 우리의 미래

저탄소 녹색성장과 우리의 미래
-21세기 생명․환경․상생의 패러다임-


김 성 훈 (중앙대 명예교수, 환경정의 이사장, 전 농림부 장관)




삶의 질 향상을 향한 지속가능한 녹색경제


21세기 세계思潮의 주된 흐름(Main Stream)은 민주화, 세계화, 지방화시대를 넘어서 생명․환경․여성 중심의 지속가능(sustainable)한 사회발전을 향한 상생주의이다. 이 같은 사조의 지향점은 지속가능한 “삶의 질(quality of life)” 향상이라는 목표에 수렴하고 있다. 20세기 산업사회하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의 소모적인 이념(ideology) 대결이 끝나고, 화폐금융적 이윤극대화를 지상 목적으로 삼는 시장경제 만능의 신자유주의 시대마저 막을 내리고 있다.

그리하여 지구촌은 바야흐로 범지구적인 ‘기후․에너지 시대’에 접어들었다. 경제․개발 지상주의가 종언을 고하고 생명과 환경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녹색성장(Green Growth) 주의가 새로운 세계사조로서 각국의 정책 기조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선진국가들은 더 이상 국민소득(GDP)과 그 성장률과 1인당 국민소득(GNI)을 국정운영의 지표로 삼지 않는다. 환경파괴 효과마저 경제성장률 수치에 포함되는 GDP 개념으로는 ‘삶의 질’을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복지․환경․교육ㆍ문화 지표를 통합하여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광의의 녹색성장지표들을 채택하고 있다. 거시경제성장의 지표이었던 국민소득(GDP와 GNI) 수치를 국정목표로 삼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아직 개발주의 시대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몇몇 토건(土建)국가들 뿐이다.

이렇듯 21세기는 가계와 기업과 국가의 경영목표와 경영패러다임에 대한 사고(思考)의 틀이 크게 바뀌고 있다. 민주화(democratization)는 필수이고, 세계화(globalization)에 대응한 지방화(localization)의 강화, 즉 세방화(glocalization) 라는 신개념이 등장했으며 생태환경과 사회발전이 조화를 이루는 지속가능한 녹색경제(Sustainable Green Economy)의 발전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치와 경제정책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와 함께 종래의 토목건축 위주의 사회 운용 패러다임이 생명과 환경생태계를 중시하는 상생의 구도로 바뀌고 있다. 바야흐로 21세기는 삶의 질(Quality of Life) 향상을 위한 지속가능한 녹색사회의 건설이라는 주제가 모든 의사결정의 Key word가 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8월15일 이명박 대통령이 밝힌 저탄소 녹색성장(Green Growth)이라는 정부의 정책지향도 이같은 지속가능한 발전개념에 기반하고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삶의 질 향상: 환경과 사회경제적 지속가능성


세계화(glocalization) 라는 것도 세계 유수의 다국적 초국경기업들(MNCs, TNCs)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무역자유화와 미국식 경제체제에의 동조화(同調化)가 더 이상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응하여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세방화(世方化)가 그 대안으로 떠오르고, ‘사람’을 중심에 놓고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인간과 자연의 상생의 전략이 모든 입법활동과 정부정책의 핵심사항이 되고 있다. 이렇듯 인간과 자연, 문명과 생태계, 개발과 환경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지속가능한 상생의 발전패러다임은 21세기 국가와 기업경영, 사회와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지배논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 패러다임은 환경생태적 지속가능성과 사회경제적 지속가능성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접근할 수 있다. 환경적 지속가능성 문제가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된 계기는 레이첼 카슨 여사의 “침묵의 봄(The Silent Spring)”이 1965년 출판되어 세계 각국에 화학물질(농약)에 의한 환경생태계 파괴위험을 고발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사회경제적 지속가능성 문제는 인구, 인종, 종교, 사회, 문화, 교육, 복지 분야의 갈등증대로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마침내 1972년 로마클럽의 보고서 “성장의 한계 (The Limits to Growth)”는 범세계적인 자원, 환경, 공해, 무기, 인구 문제 등에 관한 미래학적 공통관심을 크게 불러 일으켰다. 그리하여 1987년 유엔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는 “우리들의 공통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보고서를 채택했고, 1992년의 “리우 환경정상회의,” 2002년의 “요하네스버그 환경정상회의”, 그리고 2009년의 “코펜하겐 정상회의” 등에선 국가별 환경 및 사회경제적 지속가능성 의제와 국제기구의 창설 운영이 제안되고 점검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과정에서 2005년 교토의정서(Kyoto Protocal)가 발효되고 그 이후 기후변화 관련 각종 국제환경 협약기구들(Conventions)이 창설 운영되었으나 아직 구속력 있는 뚜렷한 대안에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국가와 기업의 새 경영파라다임이 되고 있는 생태환경적, 사회경제적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추구하는 행위는 일상적인 화두나 다름없이 실체화되고 있다. 환경생태계 보전의 필연성을 외면하는 정부와 기업과 사회경제 패러다임은 더 이상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공통 분위기가 바야흐로 금세기 세계사조 흐름의 현 상황이다.


날로 심각해 지는 지구촌 기후․에너지 문제


알다시피 미래 인류의 재앙을 몰고올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바로 인간 자신이다. 우리 인간이 경제활동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프레온, 메탄가스, 이산화질소 등으로 이루어진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축적됨으로써 온실효과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로 2020년이면 지구상의 약 17억명이 물 부족으로 시달리고 생물종의 30%가량이 사라지며 해수면이 24㎝ 상승해 세계 곳곳의 저지대가 물에 잠길 것이라는 게 유엔산하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의 경고다.

이런 경고가 잇따르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교토의정서에 서명을 거부하던 부시 미국 대통령도 2007년 7월 G8 정상회의를 계기로 기후변화의 중요성을 인정했고 오바마 대통령 때에야 비로소 미국이 본격적인 역할과 대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제2, 제4의 탄소배출국들인 중국과 인도 정부는 여전히 속칭 BJR식 배짱을 부리고 있다.

G8이니, G20 정상회의이니하는 대형 국제정상회의들이 구호와 주제들만 거창할 뿐, 온실가스 감축 의무이행에는 상호비방과 핑계만 해대며 구속력 있는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 2009년 11월의 코펜하겐 정상회의 결과가 그 좋은 본보기이다. COOK하고 SHOW만 있을 뿐이다. 예컨대, 1992년 리우정상회의에서 선진국들은 서기 200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1990년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고, 1997년 교토회담에서는 201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에 비해 평균 5.2% 감축하기로 결의했지만, 결과는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지구촌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오히려 41%나 늘어났다. 단군 이래 국가적 최대 경사라고 용비어천가가 난무하는 2010년 11월의 G20 서울정상회의는 또 무슨 결의를 이끌어 낼지 그것이 궁금하다.

다만 삶의 질을 중시하는 유럽은 이미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1990년 대비 20% 삭감하기로 약속했고 미국은 2005년 대비 17% 감축안을 마련했다. 일본은 가장 선도적으로 2009년 9월 하또야마 총리가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무려 1990년 대비 25%까지 감축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미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인 에너지 이용효율화 시책을 전개하였다. 범지구적인 지구온난화의 폐해가 두배 이상의 속도로 일어나고 있는 대한민국은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성대한 말잔치에 비하여 실제 2009년 11월 발표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2020년까지 겨우 2005년 수준(유엔은 1990년을 기준연도로 하고 있다.)에서 4% 감축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약 8분의 1, 영국의 5분의 1 수준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이 OECD 국가 중 제1위(1990-2005년간 기준 99% 증가) 인 우리나라는 2005년 기준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11.1톤으로 이미 독일, 일본, 영국 등 선진산업국 수준을 넘어섰다.

세계적인 기후변화 전문가인 니컬러스 스턴(Nicholas Stern) 런던 정경대학 교수는 지구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증가하고 있어 그것을 흡수하는 바다와 삼림과 농업의 능력을 훨씬 초과하고 있다고 밝히고 잇다. 지난 2008년 여름 한국의 환경재단 기후변화센터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2006년 발표했던 자신의 예측치(The Economics of Climate Change, Cambridge)를 확대 수정하였다. 지구촌 대재앙을 막으려면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1990년 기준으로 평균 50%를 감축(선진국 80%, 개도국 20∼25%)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개인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현재의 5분의 1 수준인 연간 2t으로 낮춰야 함을 뜻한다. 그러자면 전 세계적으로 평균 국내총생산(GDP)의 2%에 해당하는 투입비용이 든다. 유엔의 목표는 2020년까지 지구의 온도 상승을 2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40%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확률이 50%에 불과하다.

우리 정부도 감축목표를 최소 2005년 대비 20% 이상으로 높이고, 에너지 효율을 일본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한편, 신재생 대체에너지 사용을 대폭 늘리고 산림, 농업, 갯벌, 습지 등 녹색산업 비중을 지금의 2배이상 확충해야 한다는 환경단체들의 주장에 귀를 기우릴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지구온난화 현상과 기후변화는 우리 자신들이 만들었고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토건개발주의가 불러들인 인재(人災)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9위인 우리나라에 더욱 지구 온난화의 피해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이대로 두면 연평균 기온이 세계 평균의 두 배가량 높아져진 한반도가 점차 아열대 기후대로 변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동해에 명태가 오지 않고 사과·배나무가 강원 북단의 인제와 양구에서 대구, 나주 보다 더 맛있게 잘 자라고 있다. 만약 지구온난화가 이대로 진행된다면 2050년쯤엔 우리나라의 등온선이 400㎞나 북상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남쪽엔 열대성 병해충과 미생물이 창궐해 식량 증산에 적신호가 켜지고, 북쪽에는 지금의 남쪽의 작물식생대가 이동할지 모른다. 참고로 2006년 기준 한국의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약 5억9천만톤인데 전국 16개 시도의 배출량은 경기(14.9%), 전남(12.4%), 경북(11%), 울산, 서울 등의 순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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